조카의 동아 ‘배카점’_화성산업(주)동아백화점50주년
아시아가 날씨로 하나 되려나 보다. 작렬하는 태양아래의 ‘분지 대구’는 이미 동남아의 그것을 방불케 하는 듯 하다.
차창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빗줄기로 변했으면 하는 생각을 간절하게 하며 나는 운전대를 잡고 지루하게 아스팔트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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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카쩜.. 배카쩜. 동아배카쩜…….’ 차를 타고 반월당 앞을 지나는데 옆에 타고 있던 조카가 라디오 일기예보 뉴스보다 더 짜랑짜랑한 소리로 내 잡념을 흔들어 놓는다.
차창밖에 ‘동아백화점’을 보고 세 살배기 조카가 고사리만 한 손으로 밖을 가리키며 하는 의사표현이다.
같은 터울 보다 말 배우는 것이 조금 느려 걱정을 하고 있지만, 유독 녀석의 언어구사력 가운데 간판에 관한 것은 기네스북에 등재 되어야 할 정도로 놀랍다. 예를 들자면 ‘○○마트’니, ‘○BC’니, ‘○○리아’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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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간판이 크면 클수록 잘 기억하나보다 싶었는데 웬걸, ‘반월당’ 네거리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인 사이, ‘동아백화점’ 1층의 ‘○○벅스’를 가리키며 ‘코오피, 코오피’라고 하는 걸 보면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학습, 아니 ‘흡수’ 하려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듯하다.
나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이 푸근해질 때쯤, 또다시 조금 전 신호 대기 중에 ‘코오피’와 함께 딱지가 앉도록 시끄럽게 들은 그놈의 동아‘배카’점이 출현했다고 난리다.
여긴 위치가 아닌데 싶어서 봤더니 ‘동아마트’다. 글씨를 아직 모르니 빨간 로고가 같으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동.아. 마. 트’라고 알려줬더니
“아냐, 아냐 동배카쩜, 마쩌 마쩌.”라며 우긴다.
시집 간지 몇 년이 지나도록 2세 소식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언니의 귀한 딸이자, 나의 조카 ‘송이’, 유독 이렇게 기억과 인지력은 내가 탐이 날 정도로 나를 놀래 킨다.
서른이 훌쩍 넘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결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송이’의 이런 앙증맞은 ‘경이로움’을 느낄 때마다 나도 때가 되었나 보다 싶어 괜스레 샘이 나곤 한다.
조카를 태우고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오는 길,
형부와 언니의 직장이 서울이라 결혼 초부터 거기서 살림을 꾸려 왔는데, 놓치기 아쉬운 직장이라 수년간 대구에 엄마가 ‘송이’를 봐주고 있었다.
나는 몇 달 전 서울로 직장을 발령 받아 언니 집에 얹혀살고 있다. 때마침 언니부부와 나의 휴가기간이 연달아 이어져서 서울로 데리고 왔던 조카를 내가 다시 대구로 데리고 내려가는 길 인 것이다.
출생은 서울이지만 대구사투리로 말을 배우고 대구 음식을 먹으며 자라나고 있는 ‘송이’는 말 그대로 ‘보고, 듣고, 먹고, 노는’ 모든 것이 서울출생, ‘대구인생’이다.
녀석이 보기에 대구에 빨간색 비둘기마크인 화성산업 로고가 그려져 있으면 모두가 ‘동아백화점’이라고 부르나 보다 지레 짐작을 했는데, 또다시 혀 짧은 발음으로 ‘동아배카점 또 있데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마트도, 백화점도 있을 때가 아닌 곳에 뭐를 보고 그러나 싶어 자라목으로 고개를 돌려 봤더니 ‘맙소사’ 그 순진무구함에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성파크드림 아파트’를 보고 그러는 거였다. 예상했던 대로 녀석이 말하는 ‘동아배카점’이라는 사물인지방법은 ‘빨간색 비둘기 마크’ 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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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일 때부터 대구에서 자라나면서 흔하게 접했었을 저 화성산업의 마크가 ‘동아백화점’이라고 ‘송이’의 머리에 ‘각인’이 된 것은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동아백화점에 자주 데리고 갔던 것처럼, 송이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구에 있을 때 자주 들르던 ‘동아백화점’은 나의 성장과 함께 그 크기가 작아져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조카에게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마음이 흐뭇했다.
 유년시절 으레 ’백화점에 간다.‘ 라고 하면 ’동아‘를 떠올렸던 ’우리의 시절‘을 떠올리니 ’백화점‘씩이나 간다며 화장대에 앉아 분을 바르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조카를 빨리 데려다주고 친구들을 만나 휴가 떠날 모의를 해야 겠다는 생각 때문에 원망스럽던 내 초보 운전 실력은 어느새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촉하게 되는 것 같았다.
송이의 백화점, 나의 백화점, 엄마의 백화점이었던 ‘동아백화점’
어찌 보면 송이가 빠알간 모든 화성산업 마크가 그려진 건물을 두고 ‘동아배카점’이라고 우기는 것은, 내가 유년시절 ‘동아’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설레임’과 ‘다채로움’과 ‘즐거움’들이 고스란히 송이에게도 전해 졌을 것이므로, 송이 머릿속의 비둘기마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고,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꿈’으로 각인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송이에게 백화점은 쇼핑을 하는 곳이 아니라, 가장 많이 있고, 가장 많이 이용하고, 가장 놀기 좋은 곳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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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오는 동안 철없는 이모의 미숙한 배려와 초보운전의 승차감으로 피곤했는지 어느새 송이는 잠이 들었고, 땅거미가 졌다.
라이트를 켜고 집으로 가는 길. 라디오에서 들려지는 ‘동아백화점’의 CF와 간간히 프로그램 말미에 들리는 ‘화성산업 동아백화점 제공’이라고 들리는 소리가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게 들리는 밤이었다.
언젠가 ‘화성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로부터 ‘창업 50주년’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엄마 나이만큼, 나의 나이의 반을, 조카나이의 열배가 넘는 시간을 대구, 바로 여기에 길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회사.
모든 기업들이 고객과 ‘친구’라며 떠들썩하게 마케팅을 하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뜨겁게 나의 마음속을 적실 수 있는 기업이 있을 까 싶다.
분 바른 엄마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나의 마음이 흔들렸던 대구생활과 송이에게 가장 큰 회사로 그려져 있는 화성산업.
나는 서울로 떠난 이후 찾지 못했던 ‘동아백화점’으로 차를 돌렸다.
시집 못간 과년한 여자가 부모님께 내려가는 가벼운 손이 스스로 부끄럽다는 걸 모르고 가던 차, 오랜만에 들른 그곳의 느낌은 너무나 포근했다.
폐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친절한 손으로 건네받은 와인과 몇 가지 소박한 선물들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조카의 여린 숨결은 어느새 할머니, 나의 어머니의 품으로 안겨졌고, 괜스레 올라오는 눈물을 참으며  나는 엄마를 뒤에서 와락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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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교편을 잡고 살다 몇 년 전 퇴임하신 어머니는 조카를 보기 시작한 후부터 부쩍 늙으셨다. ‘할머니’로 변신한 나의 엄마, 나는 엄마의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고, 동아백화점에서 사온 와인과 함께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오랜만에 느끼는 ‘대구의 밤’을 보냈다.
엄마는 대구로 오며 있었던 송이와의 에피소드와 나의 감정들을 듣고는 공감을 하며, 그 시절이야기를 했고, 송이와 함께 같던 ‘동아백화점’에서의 남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지만, 우리에게만은 특별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돌아보면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에게 동아백화점은 당신자신의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꽃 같았던 시절을 보냈던 추억 그 이상이었던 것 같았다.
하기사 ‘스승의 날’이나 제자들이 특별하게 찾아오는 날이면, 으레 동아백화점으로 포장된 선물들이 가득했던 것은 나도 기억하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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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비한 한 병의 와인이 늙으신 노모의 취기를 돌게 했는지 처녀시절 이야기로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야기꽃을 피웠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벽도 허물었다.
이제 어머니는 지금 주무시고, 나는 책상에 앉았다.
이게 나에게 ‘동아백화점’이고, ‘화성산업’이다.
한 기업이 ‘50년’의 세월만큼 사랑받고, 이만큼 나를 적시게 할 수 있고, 어린아이의 뇌리에 ‘꿈’으로 영글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엄마의 세월 같은 50년, 이제 나의 조카 ‘송이’에게도 그러한 추억과 꿈으로 계속해서
 ‘화성산업’이 기억될 수 있기를, 그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의 열매가 또다시
빠알갛게 영글어 나누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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